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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31건)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
「도적을 잡은 칠석동 당산나무」는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에 있는 당산나무와 그 나무를 지나다가 봉변을 당한 도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마을에서 이인식의 이야기를 채록하였고, 1990년 광주직할시에서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었다.옷돌[칠석]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소가 쪼그리고
운정동-당산나무
당산-나무(堂山一) 【나무】 매산바우 서쪽에 있는 나무이다. 당산제(堂山祭)를 지냈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
용전동-당산나무
당산-나무(堂山一) 【나무】 용전 복판에 있던 나무이다. 해마다 정월 보름날 밤에 당산제(堂山祭)를 지냈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
문흥동-당산
당-산(堂山) 【산】 문산 남쪽에 있는 산이다. 당산제를 지냈었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
망월동-당산보
당산-보(堂山洑) 【보】 분토 동남쪽 옆에 있는 보이다. 당산제를 지내던 나무가 있었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
도촌동 조탑(돌탑)
남구 도촌동 조탑은 마을 앞에 위치한 김재철씨와 양동필씨 논 2곳에 있다. 원래의 위치는 이 마을앞 논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에 옮겼다. 마치 사찰 입구의 조탑이나 제주도의 방사탑 모양으로 원형의 기단을 쌓고 꼭대기 중앙에 선돌을 세웠다.양동필씨 논에 위치한 조탑은 높이 150cm의 화강석을 6단
풍암동 신암마을
서구 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에 있는 입석이다. 본래 신암마을에 입석 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 있는 입석 3기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과거 신암마을에 있던 3개의 입석은 할머니 당산나무와 똑바로 1열을 지어 세워져 있었으며 60m 반경 내에 있었다고 한다. 입석형태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상협하관형(上狹下
월남동 녹동마을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조사일시 : 1993. 9. 2조 사 자 : 정 기 진조사방법 : 현지면담조사 (과거시행)제 보 자 : 허남곤 (67)녹동마을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는 도로 우측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분적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김해김씨, 나주임씨 등 70여호가 살며 요즈음은 대파 농사로 높은 소득을
월남동 녹동마을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지하철 녹동역에서 내리면 마을 입구 오른편 은행나무 옆에 있다. 규모는 크기 126cm, 둘레 98cm로 울퉁불퉁하다. 선돌 주변은 3m 사방으로 자연석을 이용하여 주위에 시멘트로 단을 만들고 가장자리에는 철책으로 난간을 만들어 보호막을 쳐놓았다. 이 선돌은 그 옆에 있는 은행나무
지원동 용연마을
용연마을 입석이 1기가 있는데 현재는 개울가에 넘어져 있다. 규모는 높이 186cm, 둘레 167cm이다.이  선돌은 원래 용연마을 당산제의 한 형태로 당산나무인 할아버지당산과 함께 할머니당산이었다. 일제때 왜인이 당산나무를  베어가면서 그 옆의 선돌을 개울로 넘어뜨려 버렸다. 선돌은 넘어져 지면에서 2m 정도
내산동 쌍내마을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 3기는 쌍내마을 입구의 김종균, 이학봉씨 논을 중심으로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도로공사 이전에는 4기가 있었다고 한다. 선돌옆에는 마을의 당산나무가 있다. 1호는 상협하관형으로 크기는 높이 124cm, 폭 140cm, 두께 40cm로서 상부는 파괴되어 떨어져 나갔으며 선돌에 대한 주민들의
송산동 세동마을
광주 광산구 송산동 세동마을 오춘수씨 논 어귀에 있는 선돌은 상협하관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돌 하부에는 자연할석을 주변에 배치하여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마을에 따르면 이 선돌은 나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했다고 전해지며 주민들의 선돌에 대한 특별한 치성은 없었다. 예전에는
용동 기곡마을
광주 광산구 용동 기곡마을 선돌은 마을앞 당산나무 옆에 위치해 있으며 우산각과 함께 있다.  규모는 높이 117cm, 폭 58cm, 두께 35cm이다. 선돌의 모양은 남근석과 유사하며 아래 부분에는 잡석으로 채워져 있다. 지면에서 보면 토석 혼합의 대를 쌓아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마을에서 행해지는 선돌에
선암동 선암마을
선암仙岩마을은 송정동 영광통에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지나 매일유업과 호남대학교 사이의 대로변 우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인 마을 형상은 마을 뒤편은 어등산이 감싸고 어등산 남록이 마치 소쿠리 모양을 이루며 마을 앞에는 황룡강이 흐른다. 그래서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적인 조건을 두루 갖춘 마을이라고 할
송학동 봉학마을
광산구 송학동 봉학마을 선돌의 위치는 마을 앞의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박학열씨 논 어귀에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는 원래 3기의 선돌이 있었으나 경지 정리로 인하여 2기는 매몰되어 사라지고 현재는 1기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크기는 높이 100cm, 폭 40cm, 두께 30cm이다.선돌의 모양은 상부 끝은 뭉퉁하게 되어 마치
금곡동-시검바우
시검-바우(시검암) 【바위】 서름 서쪽에 있는 바위이다. 선조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이 바위를 목표로 정하고, 날마다 칼 쓰는 법을 연습하였다 한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었다고 하며, 금곡마을에서는 8·15광복 이전까지 당산제와 기우제를 지냈다.광주시 북구
금곡동-뛰엄바우
뛰엄-바우(머리바우) 【바위】 무등산의 인왕봉과 천왕봉 사이에 있는 바위이다. ① 조선 선조 때 의병장(義兵將) 김덕령(金德齡) 장군이 뜀질을 하며 무술과 담력을 길렀다 한다. ② 머리 얹은 것같이 생겼다. -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광주시 북구 금곡동 뛰엄바우는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었다
월남동-당산골
당산-골(堂山一) 【골】 원지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당산제를 지냈다.- 한글학회(1982), 한국지명총람
삼괴정 三愧亭
북구 금곡동 산17-5 북구 무등산으로 가는 길에 충장사에서 광주호 방면에 금곡동이 나온다. 금곡동 입구 삼거리 길에서 소쇄원으로 가는 도로 옆 하천변 윗골(金감마을)의 꾀꼬리 당산나무가 있는 곳에 삼괴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다. 삼괴정은 1900년 괴암槐庵 문병일文炳日(1877~1948)이 부친 삼괴三愧 문유식文愉植의
덕남정 德南亭
남구 덕남동 (덕남마을)덕남마을 입구의 높은 산록 위에 1935년에 건립된 덕남정이 있다. 이 정자는 석초 사각기둥의 평기와 건물로 앞면 2칸 옆면 2칸의 구조로 방이 없는 판자 마루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촌정이다. 상량문에 소화昭和 10년이라는 연대 표시가 있다.주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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